Sputnik의 무한궤도

올 설에도 역시나 내려가지 못할꺼 같다.
생각해보니 서울 생활 2년동안 보통 다들 그렇듯 각 명절때 2번씩 총 4번정도는 보통 내려가게 되는데..
1번만 제때 찾아갔지, 3번은 다른 이유로 집에 내려갔었다.
이번 명절 또한, 2월의 친구의 결혼식을 이유로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할 듯 싶다.
제주도라는 이유가 큰 몫을 하긴 하지만(경비..특히나 주말 경비는 더더욱 비싼데다, 짧은 텀을 두고 2번을 다녀오기엔..조금 어렵긴 하다) 그래도,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구정 설 명절을 앞두고 있으려니, 마음이 편치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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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글을 쓰게 되었냐면, 명절 휴일을 앞둔 하루 전이라 팀원 전체가 일찍 점심을 먹고 들어와서는, 여느때처럼 블로깅을 하던 중, 가끔 들르던 "피앙새" 님의 블로그 포스팅을 보게 되었다.
설날에 호떡집에 불나듯 하던 방앗간 이라...
익숙한 단어에 무심코 먼저 클릭을 하고 읽었는데 편치 않은 마음이 증폭되어 온갖 추억과 상념이 떠나가질 않게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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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집 아들이다.  고향은 부산인데 내가 1살 갓 넘기던 시절 부모님이 짐싸들고 제주도로 이사가서, 떡집을 하게 되셨다. 그 이후로 난 서른해 내내 떡집아들로 불리우게 되었지.
어릴때는 그게 좀 싫었었다.
단순, 부모님 하시는 일이 떡집이라는 것 때문만이 아니라, 보통 떡집을 하게되면 (그 당시엔 더더욱) 떡을 만드는 공장과, 살아가는 공간이 될 집(방)을 같이 지어서 생활하게 된다.
남들도 그랬고, 우리집은 더군다나 아버지가 기술자셔서 거의 엔간한 상가 건물도 뚝딱뚝닥 개조해서 살 공간을 마련하시곤 했다.
그게 그렇게 싫더라.  뭘 해도 방앗간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그 때 당시엔 장사도 워낙 잘되서, 손님이 매번 북적거리는 데다가, 공장과 집이 이어진 구조라 보니 이래저래 불편한게 한두 개가 아니었었다.
제일 힘들었던건 화장실이었지 아마,
이사를 총 3번정도 갔던거 같은데 그 중 한번은 바다가 보이고, 논밭으로 둘러쌓인 촌구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그곳만한 곳이 없다싶을 만큼 좋은 곳이라 생각되지만, 그 땐..... 많이 어렸었나 보다. ;;)
그 곳에서 화장실을 가려면 공장을 지나 방을 지나, 부엌을 지나 밖으로 나와서, 7-8미터를 지나고 나야 비로소 당도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힘들게 찾아간 화장실이 하필이면 푸세식 화장실.
밤이면 껌껌하니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 곳에 덩그러니 있던 화장실이 참으로 싫고, 무서웠고, 부끄럽고, 짜증났었지.
그 곳의 생활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의 생활에서도 화장실은 참으로 어렵고, 힘들고, 싫었던 생각이 난다.
덧붙여 대게는 오는 손님들과도 같이 사용해야 했으므로...

음.. 할 얘긴 이게 아니었는데, 역시나 옆으로..많이.. 아주 많이 새버렸네.
여튼,

난 그런 떡집에서 평생을 살아오다가, 두 해전 상경을했고, 아직도 부모님은 제주도에서 방앗간을 하고 계신다.
근데, 예전과 달리 요즘 떡을 찾는 이들도 정말이지(정말이지..정말이지..참으로.무진장..) 줄어든 데다가, 대부분의 집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게 되었을 뿐더러, 개업이니 하면서 어떻게든 떡이 있어야 하는 곳에서 조차도, 편리하고, 깨끗하고, 값싼 주변 대형 마트의 떡을 사서 쓰다보니, 자연스레 방앗간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우리 집이라고 다를 바 없이, 꽤나 오래전부터 눈에 띄게 장사가 되질 않았은데, 그래도 그나마 되는 날이라면 피앙새님 말마따나, 명절!

제주에서 살때건, 전에 내려갔을 때건, 명절 때가 되면 온 가족(다섯명)이 동원되어 정말이지 가내수공업으로 떡을 만들어 팔곤 했었는데, 추석 명절보다도 설 명절때가 압권!

가래떡을 만들기 위해 쌀을 씻고(기계) 빻고(나) 찌고(형) 썰고(기계/나) 파는(동생) 삼남매는 오는 손님들이 보시기엔 아주 생경한 광경이었나 보다.
어릴적에만 해도, 오는 손님들 대부분에게 대견하다.기특하다.이쁘다.착하다.. 온갖 미사여구를 다 듣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아니라며 쿨한척 하는 삼남매.
그걸 뿌듯하게 바라보시는 부모님.
다른 가정과 달리 우리집에선 할 수 있고, 겪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그런 연간행사 아닌 행사였는데..

이번 설 명절에는 지키질 못하게 되었네.
생각해보니,저렇게 다섯 식구가 모두 모인게 근 몇 년 동안 저번 추석 한번 뿐이었던 것 같다.

앞으론 떡이란 걸 알지 못하는 애들도 있겠지.  라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하는데, 뭐 , 그 정도까진 아닐테지만.. 확실히 예전만큼 사람들이 떡을 좋아라 하지 않는 건 사실인가 보다.
주변 지인들 조차도 하나같이 말하는게 되려 요즘 떡을 먹고 싶긴 한데, 막상 찾아 먹게 되진 않게 되더라는 말들.
내 주변에서 조차 그렇게들 얘기하는데, 다른 이들은 어련할까...
그래도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할 줄 아는게, 그리고 잘 하는게 떡만드는거다 보니 이제 그만두고 다른걸 찾아보자는 말을 몇번 드렸었는데도 도통 듣질 않으신다. (물론, 그럴 상황도 형편도 되질 않지만..)
생각보다 떡 만드는 일이 엄청 고되다는 걸 아는 나로서는 참으로 미안하고, 송구스럽고, 가슴이 아프다.
어려울 때 도와드리지 못해서 죄송하고, 할 수 있을 때 좀 더 잘해두지 못해 가슴이 아프다.

점심 먹고 이 글을 쓰기 바로 전에 통화를 하면서, 괜찮다 괜찮다 하시는 엄니의 목소리가 귓가에 아련하게 맴돈다.
이제 예전같지 않아서 손님들이 많이 없다고 너 없어도 괜찮으니 걱정 말라시던 말씀.
그게 되려 걸리고 아픈건 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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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갑작스레 쓴 글이라 두서도 없고, 우울한 느낌만 풀풀 나는 글이 되버렸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풀어내니 조금은 위안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덧붙여서.. 아까 하지 못한 말..

엄니.
저 떡집아들인거 세상이 다 아는데.. 다들 앞으로 좀 더 나아질꺼래요... 분명. 
안된다 그래도.. 뭐 어때요. 내가 잘 하고, 형이 잘 하고, 동생이 잘 하면 되지.
호강시켜드린 다고 장담은 못해도, 예전처럼 행복하게 웃을 수 있게 해드릴께요.
우리들 걱정 너무 하지 말구, 올 명절에 내려가진 못하지만, 바로 다음달 내려가서 찾아뵐께요.
그리고 내일,모레..너무 고되게 하지 마시고, 좀 쉬엄쉬엄 하면서 건강도 챙기시구요.
그래도 형은 내려가니까, 죄다 형한테 시켜버려요!! ㅎㅎ

사랑합니다! 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