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utnik의 무한궤도

아버지는 전형적인 부산 사나이다.
무뚝뚝하고, 표현에 서투른데다, 성격은 엄청시리 급한 다혈질의 경상도 사내.
고생하고 외로워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어릴적 형과 자주 나눴던 말 중 하나가 "아버지처럼은 하진 말자." 였다.
밥상머리 앞에서든 어느때든, 그냥 장난삼아 나누었던 얘기였노라고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었지만, 점점 형편이 어려워져가고 점차 머리가 굵어가기 시작하면서 정말로 "닮지 말아야겠다" 라는 생각을 서로가 차츰 갖게 되었었던 것 같다.
단순히 성격을 두고 했었던 말이었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을 지나면서 부터는 "아버지" 로서의 본연의 모습에 실망했던게 아니였나 싶다.
작금의 현실이 아버지로 인한 것이었는지, 다른 일로 인함인지 솔직히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어렴풋이 아버지 때문이라고 생각하곤 하면서도, 그래도 조금 더 생각하고, 고민하며, 느꼈던 것이라고 기억하지만, 왜? 냐는 물음의 답을 구하기도 전에 닫아버렸던 내 마음을, 나 혼자만 몰랐었던 것 같다.

집안이 어려워진 후, 형이든, 동생이든, 사정을 아는 주변 지인들의 입을 통해서 들려오는 나란 애는..
대인배요, 착한 애요, 효자요, 속 깊은 애였었다.
그렇다고 스스로 인정했던 적은 없었노라고 생각한다.
단지, 당연한걸 왜들 그렇게 이유를 갖다 붙이고, 지레 더 심각하게 구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어서, 어느 누구라도 내 처지에서는 다들 그렇게 할꺼라고, 하는게 당연하노라고 일일이 설명했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몇 년 여를 달려왔다.
지금 또한 예년의 그 생각과도 그때의 환경과도 별반 차이가 없다.
다만, 조금 아쉽고, 조금 서럽고, 조금 안타까운 감정에 혼자 시커먼 구렁텅이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던 때는 있었던 것 같지만, 그것 또한 어떤 이유에서건 누구든 한번쯤은..(혹은 꽤 오랜 기간동안을..) 지나가는 과정인 거라고 생각하곤 했을 뿐이다.

그렇게 지내다가 문득 생각해보니, 언제부터인가 자식들이 아버지와 통화(대화)하는 빈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니 하질 않았다는게 맞는 것 같다.
어머니를 통해 듣는 안부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는지들.. 나조차도 아버지와 직접적인 대화는 거의 하질 않았다.
다른 이유는 없었노라고, 단지 무슨 얘기를 해도 "어" 한마디 외에는 별 말씀을 하지 않으시는 아버지와의 대화가 왠지 어색하고 껄끄러웠을 뿐이었노라 생각할 따름이었다.
미움이나 후회의 감정이 조금씩 조금씩 쌓여서 나도 모르게 이끌린 선택이던가 하는 생각은 한번도 해보질 않았었다고 여겼었다.
그냥...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 꺼라고..
여느 집의 무뚝뚝한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  더군다나 떨어져 살게되고 나니 더더욱 소원해진 가족간의 관계.
딱, 그 정도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그런 와중에 아버지의 건강이 조금씩 나빠지기 시작하셨다.
삼형제가 모두 육지로 와서 사는 동안이라, 직접 보질 못하니 그만큼의 실감 또한 느끼질 못하고 있었다.
전혀 그런 내색따위 하지 않을 어머니란걸 알면서도, 주기적으로 통화하게 되는 어머니와의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나마, 수화기를 통해 흘러오는 분위기를 느끼며 어느정도는 알고 있는 거라 생각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심각했었나보다.
여차했으면 큰일 날뻔 했노라며, (물론 상황이 다 지나고 난 후, 연락하셨다.) 그 간의 사정을 전부 전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리 크게 여기질 못했었는지..
단순, 혈압으로 야기한 문제라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급한 상황을 넘기고 나서 지금은 문제없노라는 말을 들으며, 정말 바보처럼 "문제없겠지" 라고 생각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간 해오던 버릇인마냥, 아버지께 전화 한통 하질 넣질 않았었다.
머릿속으론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

이틀 후, 퇴근 즈음 회사에 있는동안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다. (내가 전화를 받기 어려운 것을 아시기에, 전혀 이런적이 없었다.)
받자마자 버럭하시면서, 니들이 자식들이냐는.. 어떻게 아버지한테 전화한통 안하냐는..어머니의 말씀.
순간 당황스러웠으나, 그런 놀람의 순감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 또한 뭐라뭐라 말을 해댔었다.
오늘 퇴근길에 통화하려 했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대면서 말이지.
답답한 마음에 전화를 하셨을텐데... 그래도 일하고 있는 와중인걸 알고 있으셔서 그런지 알았노라며 바로 전화를 끊으셨다.

괜시리 무거워진 마음... 머릿속으로만 굴려대던 생각의 조각들이 천근만근이 되어 양 어깨를 사정없이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 실한 무게감에 이끌려, 퇴근하는 길에 바로 아버지께 전화를 넣었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예닐곱 차례의 문의와 안부를 전함에도 여전히, "어" 외에는 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그런데, 약간 달랐다. 여느 때와 같은 말투,억양이라고 생각할 즈음... 비로소 느꼈다.

참.. 내가 모자랐구나.
가만히 귀 기울여 듣고 있으면, 단 한글자 말일지라도 이전과의 다름을 느낄 수 있는건데..
어떤 감정을 갖고 있을지라도..
아픈 사람은 아버지였는데,..
혼자서 골백번을 생각하며, 무슨 결론을 내렸든..  그건 단순히, 내 기준으로 결정지은 내 감정의 찌끄레기였을 뿐인데..
지금 내게 주어진 현재의 삶이란게, 어떤일로 인해서든, 무슨일로 인해서든..의연하게 대처하며, 노력하고 선택한 결과인 것일진데, 마음 어느 한 켠에서라도 무얼 탓하고, 무얼 원망했었는지..

착각이었는지, 그 착각을 오해하는건지.. 모르겠지만,
"어" 라는 말 한마디에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발가벗겨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냥 원래 그랬었던 마냥 착각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오늘의 "어" 라는 말 한마디에 느껴지는 내 불편한 심기가 반증하듯, 그 간 남몰래.. 아니 사실은 잘 눈치채지 못하게..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고스란히 담아 무언의 반항을 했었더랬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힘든 크기만큼 가족 누군가 또한 그만큼 힘들텐데..
따지고보면, 참으로 이기적일 수 있는 생각일텐데..
그 중에서도 가장 불편하고 어려웠던건...
이런 생각의 고리들 조차도 당연시하게 여겼던 내 자신에 대한 책망이다.
옳다,그르다의 문제이기 이전에 혼자만의 편협한 생각으로 결정지으려 했던 내 자신의 모습을 목격하게 되는 그 순간이 가장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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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어쩌겠다, 어쩐다 뱉어내고 보니..  글로 잘 추스려지지가 않는다.

다만, 이 글에 조금이나마 표현된 내 마음이.. 언젠가 다시 한번 읽게 될 즈음, 부끄럽고 오만하고 다행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면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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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 저녁 나절에 다시 어머니가 전화 오셨다.   오후의 일로 괜히 맘에 걸리셨는지, 그 간의 일을 다시 설명해주셨다.  "정말.. 미안해요, 어머니. 제가 어리석었어요..." 끝내, 하지 못한말.. 이렇게 글로나마 끄적여본다.